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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말씀

연중 제 23주일

  • 관리자 (shrine)
  • 2021-09-04 08: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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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 23주일

 

세상에는 낯선 소리나 수다스런 말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장소들이 있다.

언어는 무력해져서 그 순간에 오히려 그 장소에 경건함을 표현하지 못한다.

언어는 하나가 되었던 사람들을 서로 갈라놓는다.

 

대화는 우리를 풍경으로부터 떼어낸다. 대화는 장소의 정령에 대한 배반인 동시에 사회 규범을 만족시키는 수단이다.

그때 감동은 그 말과 더불어 사라진다.

우주와 합의된 느낌, 일체의 경계가 사라지는 듯한 감정은 깊은 내면의 어떤 성스러움과 관련이 있는데 그 성스러움은 수다스러운 것을 두려워한다.

 

더할 나위 없이 약한 시간의 꽃병을 깨지 않으려면 오려면 입을 다물어야 한다.

ㅡ걷기예찬ㅡ

 

오늘 복음은

이사야에서 8장 23절ㅡ 즈불 룬 땅, 납 달리 땅, 해안의 길 요르단 강 건너편 이방인의 갈릴레아 어둠 속을 헤매는 백성이 큰 빚을 보고 캄캄한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춰 올 것이다.ㅡ

 

이사야의 말씀대로 바로 그 땅을 표현한 것이다.

띠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역....

 

어둠속 죽음에 뒤덮인 지방을 돌아보시는 예수님, 그리고 거기에서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빛을 주시는 예수님

 

비참과 절망 밖에 없는 그 세계에 희망을 불어넣어 가는 이사야서의 메시의 모습이 오늘 말씀으로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님 앞에 귀먹은 반벙어리를 데려온다.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어본다.

그동안 어떤 누구도 고칠 수 없었던 이 사람의 비참함과 절망을 예수님께 하소연해 보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바람을 거부하지 않으신다. 그의 귀에 손가락을 넣으시고 침을 뱉어 그의 혀를 만지시고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쉬신다.

 

여기서 하늘을 우러러 ㅡ 이 표현은 기적을 행하시는 주인이 바로 하느님 아버지의 능력이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숨을 쉬시다 ㅡ 이 표현은 환자에 대한 동정이라기보다는 환자가 갖고 있는 병으로 인한 비참과 절망을 있는 그대로 자신의 것으로 느끼시며 내뱉으시는 예수님의 간절함이 담긴 기도의 마음인 것이다.

 

예수님은 인간 저변에 안고 있는 고통을 알고 계신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의 저변에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는 것도 알고 계시면서 그 일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시어 관여하시면서 하느님 아버지를 향해 은총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에파타 ㅡ곧 열려라 이 예수님의 명령에 어둠은 사라지고 빛이 솟아오른다.

 

메마르고 갈라진 땅에, 생명이 고갈해가는 바로 그곳에 생기를 심어 넣어 주시고, 꺼져 가는 등불에 다시 불을 지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귀먹고 벙어리가 되는 이 순서는 그냥 나온 것이 아닌 듯하다.

 

벙어리는 대개 귀를 듣지 못해서, 들어본 적이 없어서 말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린아이가 '엄마'하고 한번 내뱉기 위해서는 수천 번의 소리를 먼저 듣고 나서 처음으로 '엄마'하고 입을 뗀다고 한다.

 

귀가 먼저 뚫리고 입이 열리는 것이다.

 

영적인 귀가 뚫리기 위해서도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반드시 들어야 한다.

 

인간의 마음과 영혼을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것도 역시 하느님 말씀 뿐이다.

강론도 아니다.

사제의 말도 아니다.

 

하느님 말씀만이 인간을 바꾸고 변화시키는 것이다.

 

하느님 말씀을 잘 듣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의 문이 뚫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침묵 시간이 필요하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차단해야 한다.

그래야 마음의 귀가 성장하게 된다.

 

영혼은 침묵을 사랑한다.

침묵은 하느님의 집이라고 했다.

침묵 안으로 들어가야 영혼은 신비를 알아 듣는 것이다.

 

소금이 짠맛이 되기 위해서는 잠시 기다리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물에 녹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녹는 시간을 주지 않고 그냥 단박에 맛을 보면 짠맛을 잘 느낄 수 없다.

 

하느님 말씀도 사람의 마음속에 녹아서 스며드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이 침묵의 시간인 것이다.

 

우리 머리는 침묵을 잘 모르겠지만 영혼과 마음은 침묵을 잘 안다.

 

우리 신학생 때는 칠년 동안 평일 미사 때 강론이 없었다. 오직 주일만 했고 평일엔 강론 대신 성서봉독을 한 후에 5 ㅡ 10분 정도의 묵상을 했다.

그게 더 좋은 것 같다.

 

베네딕토 교황님께서도 침묵을 강조하셨고, 침묵을 최고 좋은 강론 이라고 말씀하셨다.

 

현재 한국 교회는 거의가 평일강론을 하는 추세인 것 같다. ㅡ옆 본당도 다 하니 안 할 수도 없는 분위기 같다.

 

하지만, 나는 본당에 있으면서 죽으라고 평일강론은 하지 않았다.

 

일주일 내내 떠드는 것도 힘들고 신자들을 신부 입만 쳐다보는 신자로 만드는 것도 싫었다.

 

그들의 마음에 눈을 뜨게 해주고 싶었다.

신자들 각자 묵상능력을 키워줄 필요가 있다.

 

말씀을 신자 각자가 묵상하고 마음에 새기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강론도 다 소화하지 못하면서 귀만 키우고 싶은가 ?

 

지금의 신자들이 성서지식이 모자르는가? 책이 없는가? Tv강론이 없나?

전례 안에서까지 계속 입으로 떠들어야 한단 말인가?

도대체 침묵할 시간을

안준다.

 

현대사회는 지식의 홍수 속에 사는 시대이다.

오히려 침묵이 더 더 필요한 시기라고 본다.

 

평일미사 때만이라도 조용히 그 분 말씀과 전례 안에서 침묵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관조하던 옛날 때의 전례가 더 좋다고 본다.

 

그분 말씀에 사제가 한걸음 뒤로 물러서는 게 좋다고 본다. ㅡ하늘을 우러러...

 

마음에 귀가 뚫리면 사제의 강론보다 더 행복해질 것이다.

 

마음의 귀를 뚫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상의 모든 소리를 잠재워야 가능해진다.

 

침묵 안에서 조용히 머무는 것이 가장 좋은 강론이 될 것이다.

 

침묵을 사랑하면 지복직관의 힘이 생기고 곧바로 하느님을 느끼며 그 분과 함께하는 능력이 더 커진다.

 

평일미사만이라도 강론을 줄이고 침묵의 시간을 더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그 어떤 쌍날칼보다도 더 날카롭다.

그분 말씀을 되새김질 하고

녹아 드는 고요한 침묵을 가졌으면 좋겠다.

 

에파타! ㅡ마음의 귀를 열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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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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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산나 2021-09-04
    마음의 문이 열리기 위해서
    침묵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말씀 共感합니다
  • 문요셉피나 2021-09-04
    기도 많이 해주세요.감솨
  • 실비아 2021-09-05
    신부님말씀을 아니 신부님 과 인연됨에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세요
  • 윤진후필립보 2021-09-06
    +찬미예수님
    서울 이문동성당 교우입니다.홍주성지성당에서 처음으로 미사드렸습니다. 신부님 강론이 저의 가슴을 뻥 뚫리는 느낌을 받아 큰 은총을 받았습니다. 안수까지 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순교의 마음으로 겸손되이 신앙생활 하도록 죽는날까지 노력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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