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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연중 제 31주일

  • 관리자 (shrine)
  • 2021-10-30 08: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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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 31주일

 

오늘 말씀은 하느님을 첫째로 섬겨야 한다. ㅡ마음과 힘과 목숨과 정성을 다해.... 순교자들이 몸소 가신 길들이다.

 

하느님을 섬기는데 어려운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하느님은 보이지 않고 정의할 수 없는 분이기에 ~이 아닌 분이라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그 방법으로 하느님을 섬기기 어려운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우리 뼛속까지 머릿속까지 세뇌된 것들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토마스 키팅신부도 이걸 원죄라고 했다.

 

그건 바로 세상 적 가치다.

 

난 이걸 사회적 가치라 부른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모인 사회적 존재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만든 가치들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부여한 가치들이다. 진리와 무관하게....

 

이것의 비중이 크면 클수록 반비례해서 진리와 멀어지게 되어있다.

 

진리는 좁은 문인데 반해서 사회적 가치는 금방 피부에 와 닿고 매력적이다.

 

돈과 권력과 명예 인기 박수들은 우리 인간의 존재감을 확인시켜주는데

안성맞춤이다.

 

진리를 맛보기 전까지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 사회적 가치에서 자신의 정체와 삶의 의미와 존재감을 찾을 것이다.

소속감과 안정감을 찾기도 한다.

 

그러나 길게 보면 이 모든 건 모래위에 집을 짓는 형상이다.

 

젊을 때는 어느 정도 이 사회적 가치에서 자신을 키울 필요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전체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바로 이 부분이 가장 우리를 힘들게 한다.

일단 사회적 가치에 세뇌되면 그 중독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진리와 세상 적 가치 사이에서 방황하게 된다.

 

나 자신도 그랬다.

젊을 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수 있다.

 

나 역시 젊은 시절에는 주교에게 인정받고 싶고 큰 본당에 가고 싶고...

능력 있는 신부소리를 듣고 싶고... 그랬더랬다.

 

모든 영역이 세상 적 가치를 향해 가기 때문이다. ㅡ학교, 사회, 가정, 직장, 친구 인간관계 모두가 이 세상의 것을 구하도록 종용한다.

 

사회적 가치를 찬양들 한다.

세상 적 평가들이 자신의 정체성으로 각인된다.

또 거기서 소속감과 안정감을 갖는다.

 

그러나 철이 들 수록 진짜 진리를 구해야할 것이다.

 

나이 들 수록 튼튼한 바위 위에 집을 짓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인간이 모인 모든 곳에서는 예외 없이 이 사회적 가치를 우선한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교회에서 갖고 있는 수많은 직책과 봉사들은 과연 누구를 위해서 하는 걸까?

 

한 사람이 여러 직책을 동시에 갖기도 하고 장기집권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은 몸만 교회에 있지 그 실상은

세상적인 가치와 거의 비슷한 경우가 많다.

사람들 사이에서 그 존재감을 찾는 것이다.

 

인간이 모인 모든 제 단체들은 교회를 포함해서 정치, 경제, 문화, 사회들이 서로 뒤엉키게 되어있다.

세상은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성당에서 제일 큰 힘을 가진 사람은 당연히 모든 인사권 행정. 돈 의 결재권을 가진 주교와 신부들이다.

 

그 힘 있는 책임자와 회장과 터줏대감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부분도 많은 비중을 갖는다.ㅡ그건 마치 정치판과 흡사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사제가 힘을 부릴수록 그 공동체는 사회적 가치를 향해갈 수밖에....

 

책임자가 힘을 쓸수록, 권위적 일수록 영성보다는 세상을 택하는 것이다.

속이 텅텅 비어있을 수록 그 힘을 쓰게 되어 있다. ㅡ결국 옷에 불과한 자리들 인 것을....

 

그래서 한 사람이 너무 많은 힘을 갖거나 많은 직책을 맡고 있는 것은 본인이나 공동체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

 

다 부질없는 짓이다.

인간에게 잘 보이느니 주님께서 알아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나이 들 수록 사람이 아니라

진리와 하느님을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진리는, 하느님은 보이지도 않고, 표도 나지 않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

매력 없는 존재다.

거기엔 사회적 가치와 무관하다. ㅡ나와 하느님과의 은밀한 관계뿐이다.

 

예수님께서도 육체를 갖고 있는 동안에는 자유롭지 못했다. ㅡ그래서 산속으로 피하셨다. 우린 이걸 기도라고 한다.

 

진리는 좁은 문이다.

 

왕따도 각오해야한다.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외로운 길이다.

그러나 혼자 있을 때 자신의 영혼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행복은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빼앗길 수 도 없는 참된 행복인 것이다.

진짜행복과 자존감은 외부에서 올 수 없는 것이다.

 

인간사회에서 만들고, 굳어버리고 견고한, 깰 수조차 없는 사회적 가치와 평가들과 잣대인, 저 딱딱하고 꿈적도 않는 얼음, 그 아래에서 도도히 흐르는 샘물 속 가운데에서, 내 맘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샘물들이 우리를 새롭게 한다.

 

그래서 참 생명은 야생성을

지닌다.

그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

자신 내면의 소리에 만 귀를 기울인다. ㅡ신의 소리에...

 

고독과 침묵만이 우리를 진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갖게 한다.

급기야는, 고독은 가장 나 자신을 친숙하고 풍요롭게 해주며 늘 새로움을 선사하는 질리지 않는 유일한 친구가 된다.

ㅡ혹독한 어둔 밤을 지난 후에...

 

사도 바오로는 세상의 가치를 쓰레기라고 했다.

사람들이 주는 가치, 인기, 칭찬, 박수들을 그렇게 본 것이다.

 

대중의 평판에 휘둘리지도 않는다.

 

왜?

애초에 대중에 아무런 힘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다 부질없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ㅡ 모래 위에 집이다.

 

그러나 다 그런 것도 아니다.

교회 안에서 같은 봉사를 하지만 하느님 안에서, 그분을 위해서 하면 문제 될 건 없다.

사람들의 인기 평판에 상관없이 하면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러나 그건 뼈를 깎는 자기 성찰과 홀로서기에서만 가능하리라...

끊임없이 순수성이 요구된다.

 

정말 그 경지에 간 사람들은 모임들을 요란하게 추구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갈구하는 대신 진리 안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성서에서도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지만, 같은 땅을 밟고 살아가지만 우리들 맘은 늘 하늘을 향해야 한다고 했다. ㅡ진복팔단이 그것이다.

 

세상과 진리는 함께 갈 수 없다.

두 주인은 함께 섬길 수 없다.

 

진짜 하느님 나라는 볼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계속해서 눈에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박수치는 곳에서 찾고 거기서 확인 받으려 할 것이다.

심지어 하느님 나라까지

박수와 인기와 관심 받는 곳으로 착각들 한다.

세상의 가치가 교회에 그대로 들어간 것이다.

 

모임이 많은 사람일수록 진짜 하느님 나라와 거리가 멀다고 단언할 수 있다.

 

월든의 소로우도 자신이 산 속에 들어간 이유를 말하기를 사회적 가치에서 멀어지기 위해서라고....

 

사람들의 잣대, 관습들, 인습,

길들이기 교육들에서 자유를 추구하노라고...

 

그래서 참된 은수자들은 세상을 떠나, 사회를 떠나

홀로서기 안에서 진리를 발견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진리와 하느님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기란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닐 수 없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작업이랄까? ㅡ그래서 좁은 문이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전혀 표도 나지 않는 외로운 길이다.

 

대중에 인기와 관심을 구하는 사람이 과연 진리를 구할 수 있을까? ㅡ불가능하다

 

대중에 무관심 할 수 있어야

진리 쪽으로 간다.

동시에 같이는 갈 수 없다.

 

그 만큼 사회적 가치는 진리로 가는데 악과 같은, 독소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이 모든 걸 뒤로 할 때만이, 비로소

마음을 다해 정성을 다해 목숨을 다해 힘을 다해

주님을 구하고 그분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진리는 이 세상을 멀리 할 때 구할 수 있게 된다.

 

사람들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느끼는 자는 미안하지만 진리에 가기 힘들 수 있다.

 

사회적 가치와 진리는 동시에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가지만, 그리고 모임도 하지만 그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세상없이는 못 산다면, 모임 없이는 신앙이 어렵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다.

 

참 신앙은 하느님 안에 머물고 진리를 향하도록 한다.

 

종국에는 하느님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홀로서기를 구해야 할 것이다.

홀로서기가 안되면 세상 이란 마약으로 그 허전함을 달래려 하지만 채워질 수 없다.

 

나이 들 수록 마약이 필요 없는 사람이 건전한 정신인 것이다.

 

하느님만이 인간을 채워줄 수 있는 분이시다.

 

내 존재의 기초는 무엇인가?

 

허물어져가는 저 세상들인가? 흔들리지 않는 진리에 기반을 두고 있는가?

 

첫째가 골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사회적 가치?

진리 ?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홍주성지

머슴 올림

 

* 평신도주일을 맞이하여 여러분들의 신앙 체험을 초대합니다.

 

신앙체험 및 성지 순례 체험기를 홍주성지 홈페이지 말씀나누기에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기고자 우수작 선정하여 신부님 말씀란에 나누고자합니다.

대상 : 신앙체험 및 성지 순례 체험기

부상 : 20명 선정

상금 : 30만원

기간 : 11월 30일까지

수여일 : 12월 첫 주 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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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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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셉 피나 2021-10-31
    신부님 글을 참 잘쓰시네요.가슴에 와닿는
    글을 꼭꼭 짚어서 참 감명받슴니다감솨
  • 실비아 2021-10-31
    신부님 다맞는말씀 인데...쉬운게 아녜요 전 이제사 그것도조금 그래서 갈증도 나고 ...감사합니다
  • 정아가다 2021-10-31
    답글이 들어 갈때가 있고 어떨땐 안되네요. 구구절절 옳은 말씀.
  • 장동근 프란치스코 2021-11-01
    참 신앙에대한 신부님 노고에 참으로 감사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참으로 신자의 도리는 신부님의 말씀에 의존합니다
    주님 말씀을 신부님이 대리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 본다면 (저의 생각임)
    본당 신부님에따라 신자들을 이끄시는 방법에 따라
    신자들은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왜 이럴까요 신자의 도리는 오로지 주님 말씀을 따르라는
    성경과 성인들의 말씀이 있는데
    신부님들의 말씀은 오직 본당 신부의 말대로 하라
    이리 알려주며 따르라 하십니다
    어찌 해야할까요 따르자니 요전 신부님의 말씀과 다르고
    따르자니 일반 신자들의 불평이 들어오고 하면서
    신부님의 어쩌면 취향대로 따라만 가야 할까요
    진정 자신만의 주님을 섬기며 사는 삶은 배척하고
    신부님
  • reply 요한신부 2021-11-01
    진리에 순명하는 것이 첫째입니다
    예수님께 순명하는 것
    본당신부도 그안에서 따르라고 해야함

    상식적이어야 합리적ㅡ모든이가 납득할수 있어야
    한다는 뜻
    다른 이들의 불평이 나온다면 따를 수 없다고 해야 하겧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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