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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섬기기 어렵게 하는것들 ㅡ31주일 글임ㅡ수정보완

  • 요한신부
  • 2021-11-02 05: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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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섬김의 어려움에 대하여

ㅡ마음과 힘과 목숨과 정성을 다해 네 주님을 사랑하라! ....순교자들이 몸소 가신 길들이다

하느님을 섬기는데 어려운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우리 뼛속까지 머리속 까지 세뇌된 것들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토마스 키팅신부도 이걸 원죄라고 했다

그건 바로 세상적 가치다

난 이걸 사회적 가치라 부른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모인 사회적 존재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만들고, 인간이 부여한 가치들이다 . 진리와 무관하게....

이것의 비중이 크면 클 수록 반비례해서 진리와 멀어지는 듯 하다.
진리는 좁은문인데 반해서 사회적가치는 금방 피부에 와닿고 매력적이고 내 손아귀에 부여 잡을수 있을것 같아보인다 ㅡ짜릿하고 달콤하기까지 하다.
돈과 권력과 명예 인기 박수들은 우리 인간의 존재감을 확인시켜주는데 안성맞춤이다

진리를 맛보기 전까지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 사회적 가치에서 자신의 정체와 삶의 의미와 존재감을 찾을 것이다 또 여기서, 소속감과 안정감을 찾는다.
그러나 길게 보면 이 모든건 모래위에 집을 짓는 형상이다

젊을 때는 어느 정도 이 사회적 가치에서 자신을 키울 필요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전체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바로 이 부분이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 같다.
일단 사회적 가치에 세뇌되면 그 중독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진다.
결국엔, 진리와 세상적 가치 사이에서 방황하게된다

나 역시 젊은 시절에는 주교에게 인정받고 싶고, 큰 본당에 가고싶고...
능력있는 신부소리를 듣고 싶고...그랬더랬다.

모든 영역이 세상적 가치를 향해 가기 때문이다.
ㅡ학교, 사회, 가정, 직장,친구 인간관계 모두가
이 세상의 것을 구하도록 종용한다. 심지어 교회안에도 세상에 먹히고 있다.
순교란 단어를 빼고 국제성지로 한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건 완전히 세상의 논리이다. 교회에서 최고의 영광은 순교이거늘....

내가 몸담고 있는 홍주순교성지를 홍주일등성지로 바꾸야하나? ㅡ비록 20평 짜리 사흘세 성당이지만....
처음으로 밝힌다. 김성태신부가 내게 말하기를 ㅡ 이런 사실은 숨기지 말고 밝히는 것이 교구민의 자랑이요 .자부심을 주는거라고....내게 용기를 주어 1년 만에 입을 열어본다.

작년 한국주교단 시성심사 위원들이 전국성지를 3달에 걸쳐 순회하고 교황청에 보고하는 제출서에 167개 성지중, 가장 모범적인 성지를 교구내에 있는 우리 홍주성지를 꼽았다( ㅡ이 영광을 전임자들인 나기순신부님 지경준신부님 그리고 성지의얼을 찾아준 차기진 박사님 홍성본당 군청그리고 우리식구들인 후원회 봉사자들에게 이 영광을 드린다 ㅡ처음으로 밝힌다.)
그러나 이모든 것보다는 그래도 순교성지라는 타이틀이 가장 영광스러운 것이다
일등이되든 말든 순교자가 계신 사실은 절대 안바뀐다.ㅡ
순교자들께서 나와 함께 살면 그만이다. 이게 중한 것이여...
.
순교가 국제로 둔갑하다니.....누구 발상인지? 너무 세속적이다

순교ㅡ국제 누가 더 품위가 있나?

지도자 한 사람에게 머리를 조아리게 하는 작태들, 인사권을 권력으로 쓰는 것, 등쳐먹는 작태들
자신의 영달을 위해 봉헌금과 기부금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 아부용, 뇌물성으로 사용하는 것,
이것은 주님의 교회를, 주님의 사람들을 자기가 가로 채가는 벼락맞을 일이다ㅡ모든 헌금은 하느님 꺼다

사회적 가치를 찬양들한다.
세상적 평가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또 거기서 자존감과 존재를 자리매김한다

그러나 철이 들 수록 진짜 진리를 구해야할 것이다
나이 들 수록 튼튼한 바위 위에 집을 짓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껍데기를 집어 던져버리고 진리를 향해 있는힘껏 가야한다


교회에서 갖고 있는 수많은 직책과 봉사들은 과연 누구를 위해서 하는 걸까?
한 사람이 여러 직책을 동시에 갖기도 하고 장기집권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은 몸만 교회에 있지 그 실상은
세상적인 가치와 거의 비슷한 경우가 많다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찾는 것이다.
자신을 과시하며 은근히 즐기는 면도 있다 ㅡ봉사와 함께...
필자 역시 말씀의 봉사를 한답시고 짐짓 제 자신이 옳다는 것을 은근히 교묘히 드러내려는 유혹과 늘 싸우고 있다ㅡ솔직한 고백이다

인간이 모인 모든 제 단체들은 교회를 포함해서 정치,경제, 문화, 사회들이 서로 되엉키게 되어있다.
세상에 사는한, 거기서 자유로울수 없다.
필자의 멘토신부님 중 한분은 갸정방문을 일체하지 않았다ㅡ이유는 선입견이 생겨 차별을 하게되기에....

성당에서 제일 큰 힘을 가진 사람은 당연히 모든 인사권 행정. 돈의 결재권을 가진 주교와 신부들이다
그 힘있는 책임자와 회장과 터줏대감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부분도 많은 비중을 갖는다.ㅡ진리보다 힘이 중심이 될때 그건 마치 정치판과 흡사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사제가 힘을 부릴 수록 그 공동체는 사회적 가치를 향해갈 수 밖에....
책임자가 힘을 쓸수록, 권위적 일수록 영성보다는 세상을 택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사람들은 하느님보다는 그 힘에 줄을 선다. 그 자체로 공동체를 망치는 것이다 ㅡ사유화가 되는 쪽으로 가는 것이다.
지도자만 지옥가면 다행지만 줄줄이 사탕들이 생기기에
그 지도자는 더 많은 매를 맞을 것이다.
속이 텅텅 비어있을 수록 그 힘을 쓰게 되어있다 ㅡ결국 옷에 불과한 자리들 인것을....

그래서 한 사람이 너무 많은 힘을 갖거나 많은 직책을 맡고 있는 것은 본인이나 공동체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
가톨릭의 단점이다 사실 그 정신이 왜곡되고 찌그러져서 그렇지 본정신은 아니다.

지도자들이 무조건 옳다는 사고가 바로 그거다.ㅡ교회 전체에 계신 성령의 힘에 기반을
둘 때 그런거지 한 개인이 무조건 옳다고 한적 없다 ㅡ혼자 맘대로 해도 된다고, 그런 권한 준적도 없다
한국교회의 고질적 착각이다ㅡ그런 작태는 예수님의 것을 한 개인이 가로채는 사유화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힘을 쓰는자 악을 사랑하는 자이다
오직 하나 주님의 집에 머물기늘 바라나이다.
인간에게 잘 보이느니 주님께서 알아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사도행전에 보면, 초대교회는 사도들이 다 내려놓고 기도에 전념했다고 똑똑히 전해준다 ㅡ정신차리고 본질로 돌아간 것이다.
교회관리에서 손을 뗀 것이다.ㅡ그 결과 더 풍성해졌다고 전하고있다. 의미심장하다. 이 시대에...귀를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작금의 교회와 지도자들은....

교회가 세상과 다른 이유는 그 뿌리가 성령에 기반을 두는 것이다
교회는 하느님께서 이끌어 가시는 것이다. 세상의가치가 아니라....
그런데 지도자들이 착각하는 데 문제가 있다 아전인수격으로 과대확장 해석을 한다
자신이 하는 모든 것은 무조건 맞는 것이라고 우겨댄다 ㅡ상식이하 무식한 거다
자신만이 옳다?ㅡ밥 숮갈 언저 놓으면 다 진리여? 똥싸는 소리다 ㅡ진리를 모독하는 것이다
진리는 한 인간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품고 갈때만 가능한 것을......

오직 사회적 가치를 떼내고 기도에 전념할 때 진리를 만나는 것이다
인간이 진리를 소유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사도들은 세상일에서 손을 떼고
기도에 전념했다.ㅡ세상일에 정진하면서 무슨놈의 진리 수호자여? 한 인간에게는 무류성 없다
있다면 교회 전체의 공동 합의성 안에서 일어날까?ㅡ오직 성령 안에서......

나이 들 수록 사람이 아니라
진리와 하느님을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진리는, 하느님은 보이지도 않고, 표도 나지 않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
매력없는 존재다 ㅡ 나와 하느님과의 은밀한 관계뿐이다.

예수님께서도 육체를 갖고 있는동안에는 자유롭지 못했다ㅡ그래서 산속으로 피하셨다 .우린 이걸 기도라고 일컫는다.

진리는 좁은문이다
왕따도 각오해야한다
홀로서기를 해야한다

외로운 길이다
그러나 혼자 있을 때 자신의 영혼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행복은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빼앗길 수 도 없는 참된 행복인 것이다
진짜행복과 자존감은 외부에서 올 수 없는 것이다.

인간사회가 만들고, 굳어버리고 견고한, 깰수 조차 없는 사회적 가치와 평가들과 세상의 잣대인,
저 딱딱하고 꿈적도 않는 얼음, 그 아래에서 도도히 흐르는 샘물속 가운데에서, 내 맘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샘물들이 우리를 새롭게한다.

그래서 참 생명은 야생성을
지닌다.ㅡ그 어디에도 머리둘 곳조차 없었던 예수님
그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마! 같은. . . .
자기 내면의 소리에 만 귀를 기울인다.ㅡ신의 소리에...

고독과 침묵만이 진리의 소리를 들을수 있는 귀를 갖게한다.
급기야는, 고독은 가장 나 자신을 친숙하고 풍요롭게 해주며, 늘 새로움을 선사하는, 질리지 않는 유일한 친구가 된다.
ㅡ혹독한 어둔밤을 지난후에...

사도 바오로는 세상의 가치를 쓰레기 라고 했다
사람들이 주는 가치,돈 ,인기, 칭찬, 박수들을 그렇게 본 것이다

대중의 평판에 휘둘리지도 않는다
왜?
애초에 대중에 아무런 힘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다 부질없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ㅡ 모래 위에 집이다.

그렇다고 다 그런것도 아니다
교회안에서 같은 봉사를 하지만 하느님 안에서, 그분을 위해서 하면 문제 될건 없다
사람들의 인기 평판에 상관 없이 하면 문제 될것은 없다

그러나 그건 뼈를 깍는 자기 성찰과 홀로서기에서만 가능하리라...
끊임없이 순수성이 요구된다.

정말 그 경지에 간 사람들은 모임들을 요란하게 추구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갈구하는 대신 진리안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성서에서도 ,같은 땅을 밟고 살아가지만 우리들 맘은 늘 하늘을 향해야 한다고 했다.ㅡ진복팔단이 바로 그것이다.

세상과 진리는 함께 갈 수없다
두 주인은 함께 섬길 수 없다

하느님 나라는 볼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계속해서 눈에 보이는,사람들이 많이 박수치는 곳에서 찾고 거기서 확인 받으려 할 것이다.
심지어 하느님 나라까지
박수와 인기와 관심 받는 곳으로 착각들 한다.
세상의 가치가 교회에 그대로 들어간 것이다.

모임이 많은 사람 일 수록 하느님 나라와 거리가 멀다고 단언할 수 있다
나이 들수록 혼자 있어도 행복한 사람이 참 영성가 이다
ㅡ그 자체로 후배들에게 등불이다.

영글어 갈 수록 사람으로 부터 거리를 두고 결실을 , 죽음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 누가 나이 들 수록 이 모임 저 모임에 계속 기웃거린다면 그리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ㅡ프란치스코성인과 성철스님이 더 돋보이는 이유다.
월든의 소로우도 자신이 산 속에 들어간 이유를 말하기를 사회적 가치에서 멀어지기 위해서라고....

사람들의 잣대,관습들, 인습,
길들이기 식의 교육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추구하노라고...

그래서 참된 영성가들은 세상을 떠나,사회를 떠나
홀로서기 안에서 진리를 발견한다.ㅡ교회는 모름지기 세상과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하는 이유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진리와 하느님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기란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닐 수 없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작업이랄까? ㅡ그래서 좁은문이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이고, 전혀 표도 나지 않는 외로운 길이다.
대중에 인기와 관심을 구하는 사람이 과연 진리를 구할 수 있을까?ㅡ불가능하다

그 만큼 사회적 가치는 진리로 가는데 악과 같은, 독소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이 모든걸 뒤로 할 때만이, 비로소
마음을 다해 정성을 다해 목숨을 다해 힘을 다해
주님을 구하고 그분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진리는 이 세상을 멀리할때 구할 수 있게 되는가 보다
이 세상 안에는 진리가 없다 이세상 위에서 오신분,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리이다 길이요 생명이다 ㅡ 세상 자체가 하느님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을 받아들일 때 영원한 생명을 갈구하게 된다

신앙엔 핵심이 있다ㅡ영원한 생명이다

신앙은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 이리라.!
마지막 날 기쁘게 죽고 싶다고..,ㅡ그러면 인생을 성공한 것이다.ㅡ세상의 성공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가지만, 그리고 모임도 하지만 그 모든 것에서 자유로와 지기를....
나눔도 좋고 모임도 좋지만 그 보더 더 선행될 것이 있으니, ㅡ바로 소란한 세상을 뒤로하고 혼자있슴을 ....
그 때 마음의 귀가 열리고 하늘의 소리가 들린다

종국에는 하느님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홀로서기를 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느님만이 인간을 채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존재의 기초는 무엇인가?

허물어져가는 저 세상들인가? 흔들리지 않는 진리에 기반을 두고 있는가?

첫째가 골찌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있는 힘을 다해 달려라 !
영혼을 구하는 것은 너무나 값진것 너무나 값진것 늘 부족하다네 ㅡ지혜서


사회적 가치?
진리 ?
어느쪽을 선택할 것인가?

홍주성지
최교성 세자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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