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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공동합의성 ?

  • 요한 신부
  • 2021-11-10 14: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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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합의성

우리 교회의 가장 미성숙한 모습이다.
교회에 준 적도 없는 권한을 과대 해석하여
본당과 교구를 제 맘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비상식적인 모습에 제동을 거는 것이 바로 이 공동합의성이다

지도자의 권한은 어디까지
진리안에서 상식안에서 합리적인 선에서 수행해야하는 봉사직이다.


알아듣지도 못 할 발음하기도 어려운, 시노달리타스란 말로 바꿔쓰기로 햇는데 신자들에게 확 와닿는 공동합의성을 흐리게 할 소지가 있다고 보인다
이는 시노도스에서 온 것인데 본 뜻은 시노ㅡ더불어 함께
도스 ㅡ걸어가자의 합성어이다
시노도스ㅡ더불어 걸어가자이다

이 시대에 이 합의를 잘 이끌어내지 않으면 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의 뜻은 그 의미가 다 사라지고 젊은 세대들은 교회의 권위적인 독선적인 모습을 받아들이지 않고 떠날것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지금 교회모습은 마치 사제 주교 수녀들만 성령을 입고 신자들은 무지랭이 취급을 하는 모습도 있다ㅡ무슨 유치원생 다루듯 ...이건 성령을 무시하는 작태다

이번 이 합의성은 각자 자기 역할을 잘 수행하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말 안에는 신자들에게도 일정부문 책임이 있다는 것이 숨어 있는 것이다.

가령 나의 외조부께서는 60년쯤 나 태어나기 전 일이다 사제의 권위가 하늘을 찌를 때 일이다ㅡ감히 대들수 없는...

합덕본당 소속 구만리 공소회장 이셨다

본당신부가 프랑스 신부였는데 그 성정이 괴팍해서 신자들 무시하고 아이들 떠들면 미사책 날라가고 손찌검 폭력으로 신자들을 때리고 했다. 냉담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왈 ㅡ신부님 ! 우리 신자들 때리시려면 이 공소에 다시는 발도 붙이지 마세요 하셨다.ㅡ다시는 오지마세요!

그날 이후 사제의 손지검이 사라졌다고 했다.

공소회장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함으로써 공동체 전체가 좋아진 것이다

합의성이 잘 수행되기 위해서는 신자들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본다

선진국의 특징은 각자 자기자리를 잘 지키는 것이다 미치 톱니바뀌같이 서로 각자의 톱니가 자기 목소리와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면 하느님이 주신 풍성함이 나오게 된다

어찌보면 부조리한 공동체는
독재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걸 자연수럽게 받아들이는 구성원들의 사고도 책임이 있다 거기에 자신들이 먹힌 것이다 ㅡ마치 좀비를 보는 듯한다

어떨 때 보면 신자는 신부에게 사제는 주교들에게 비굴할 정도로 맹종하는 경우를 보게된다. ㅡ순종은 무슨 놈의 순종? 자신안에 깃든 성령의 소리도 못내다니....

맘대로 우리를 처분하세요!
하는 것 같아 보일때도 있다.

지도자들은 모든 이 안에
같은 성령과 하느님의 모상이 머물고 있슴을 함께 존중해야한다ㅡ역할만 다른 것을 사또님 행사를 하기도....

내 맘대로 해도 된다는 못된
생각은 버려야 가능한 멀고도 먼 숙제다. 교회는 그 누구의 전유물이 아니다.

사제 역시 진리안에 공동합의하에 묶여 있는 것이다

지도자는 봉사하러 온 것이다
진리안 에서....
정치하라고 예수님이 세우지 않으셨다.

상식이 무시되고 합리적이지 못하고 진리에서 멀리 사는듯이, 윽박지르는 억지는 그 자체로 지도자 자신이 하느님께 진리에 불순종 하는 것이다ㅡ그 힘은 악이다.

순명은 첫째로 예수님께 순명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ㅡ조직이나 특정인이 아니다.

민심은 천심이다
이번 교황님 공동합의성 교서에는 구성원의 전체 뜻을 지도자는 거슬러 결정 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ㅡ교황님 말씀 이전에 이미 성서에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사상이다

사실 새로운것도 아니다
사도행전을 봐도 그렇고
예수님께서 얼마나 우리 인간을 존중하고 사랑하시는지 ? ㅡ바이사리 사제들의 폭압적 권위와 달리 마치 아저씨 모습이다
ㅡ나도 인간 너도 인간


모든 직책은 높고 낮음이 아니다. 역할만 다른 것이다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이다.
내가 누군데 ? 하는 것이 어떻게 교회에서 이런일이 일어 나는지?

미성숙한
일부 지도자들의 횡포는 공동체를 망치고 있다ㅡ신자들 안에 깃든 성령을 죽이는 것이다.

권위와 힘을 쓸 수록 사람들은 그 힘에 줄을 서게 되는데 하느님보다....
자신에게 줄서게 하는 결과를 야기하게 된다
ㅡ그 자체로 공동체를 망치는 것이 된다

예수님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가로채는 것이기도 하다

얼마전에 교구 사제인 내가 시급을 다투는 긴급한 사항이 있어 어느 교구청 국장에게 나의 이 건의를 최대한 빨리 교구 책임자에게 전하라고 한적이 있었다
ㅡ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나는 주교님 뜻을 받들고 하달하는 사람이지 사제의견 올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ㅡ이건 심각한 직무유기다

자기 자리를 망각하는 것이다
윗 사람만 봐서는 안된다
가교역할을 잘 해야한다
다리역할을 하는 것이
교구청 국장들이 하는 것이거늘 .....

공동합의성이 잘 될 때
공동체는 존중감을 갖고
구성원중 하나로 자부심을 갖게된다
그럴때 각자의 탈렌트가 힘을 발휘한다
신자들 각자의 카리스마가 나오게 된다

책임자들이 한 걸음씩 힘을 내려놓고 봉사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어느 성지 순례자의 말이다
ㅡ신자들도 애써 용기를 내지 않아도 자신의 생각을 편하게 사제들에게 말 할 수 있는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고....
교회의 독선에 질려하는 듯 하다.

어떻게 하느님 나라가 이토록 폭력을 당하고 있는가를 잘 대변하는 이 시대의 아픔이었다

모두가 다 각기 제 나름의 성령을 받았다

사도 바오로는 몸에 비교하지 않았는가?
각자 그 지체들이 자기 몫을 자신의 목소리를 낼 때, 모든 공동체가 제대로 순환이 되고 정상적으로 가동되는 것이다.

교회의 방식,스타일에 대한
변화를 요청하고 있다
신학교리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 모습,몸짓에 대한
것이다

교회 안에서 사람과의 관계
이 조직안에서 교계제도 안에서 서로 관계성
각기 자기 역할에 대한 문제들인 것이다.

다른 인간을, 타인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의 문제라고 본다. 동등한 대상인가?
내 밑에.. 아랫사람?
그런 곳에는 대화가 안된다.
진정한 관계는 동등한 저울에서 교류가 된다고 하겠다.

성직주위 우리교회는 각 단체의 책임자에 따라 크게 작용할 것이다
어느 본당은 이미 공동합의가 잘 이뤄지고 있다

또 아무리 공동합의성을 강조해도 사제의 성숙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사제의 미성숙 열등감 경쟁심이 우선되면 좋은 의견을 내면 찍히고 핀잔하고. 권위도전으로 받아들이는 사제의 사목회는 결코 공동합의를 도출할 수 없다.
그러면 하느님나라는 계속해서 폭행을 당할 것이다

이런 권위적인 그릇된 일방적 가르침이 우선이었던 방식을 바꾸자는 것이기도 하다

일방적인 지시에서 먼저 경청하는 자세로 몸짓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책임자가 결론을 다 혼자 내리고 지시를 내리는 방식에서
함께 의견을 주고 받으며,
그 과정에서 합의성을 도출하자는 것이다.

세상은 이미 벌써 우리 교회에 앞서 모든일을 함께
존중하고 함께 듣고 각 개인의 모든 탈렌트를 끄집어 내어 함께 가고 있다.

이제라도 교회는 정신 차리고 그 동안의 독선을 버리고 함께 가야한다
젊은 이들은 존중 공정성이 몸에 밴 세대이다. 그들은 독선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 동안 교회는 성직주위에서 역할만 다른 것인데도 불구하고 위, 아래로 생각하는 교계제도 였다

공동합의성은 모두가 같은 성령을 받은 같은 그리스도인 임을 서로 존중하는 것이다
그 동안의 방식과 몸짓은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공동합의는 친교와 수용을 강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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