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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밤 캐롤송 유래

  • 요한신부
  • 2021-12-20 08: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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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밤 거룩한밤 탄생 유래

1818년 12월 24일 오스트리아 오베른도르프에는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집집이 성탄 나무를 장식하고 자정미사에 참석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성 니콜라우스 성당의 요세프 모어 신부(26세)는 방금 심하게 고장난오르간을 발견하였다.

수리공을 불러도 며칠 후에나
올 것이고.....
음악이 없는 크리스마스 미사란....

그는 음악에 대한 천부적인
소질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며 바이올린과 기타를 연주해서
돈을 벌어 대학까지 공부했었다.
그의 근면성과 재능에 주목한 한 신부가 신학교에 들어가라고그를 설득했다.

1815년 그는 사제서품을 받고
1817년 오베른도르프로 부임해 왔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난처한 처지에 빠진 모어 신부는 조용히 자기
서재로 갔다.
당시 캐럴들은 기타로 연주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새로운 노래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책상 위에 백지를 펼쳐 놓고
최근에 갓난아기를 축복해 주기 위해 찾아갔던 한 가족을 떠올리면서 2000년 전 아기 예수가 태어나던 장면을 연상했다.
창 밖에는 함박눈이내리고,
그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이라는 불후의 첫 구절을 썼다.
동시처럼 편하고 간결하며 아름다운 여섯 연의 노래말이 완성되었다.
미사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고 서둘러 곡을 붙여야 하였기에 그는 이웃마을에 교사로 있는 절친한 친구 그루버(31세)를 찾아갔다.
작곡에는 그가 더 능했기 때문이다.
그는 직업은 교사였으나 음악적 재능이 탁월한 이 성당의 오르간 연주자 겸 성가대지휘자였다.

그루버는 모어 신부가 쓴 노랫말을 읽고, 이 경건한 가사에 성스럽고 아름다운멜로디를 엮었다.
성가대가 연습할 시간이 없었으므로 모어가 기타를 치면서 테너를,
그루버는 베이스 부분을 노래하고 각 연이 끝날 때마다 성가대가 후렴을 부르기로 했다.
장중한 크리스마스 성가가 울러 퍼질 것을 예상하고 성당에 들어온 신자들은 뜻밖에 알프스의 시냇물처럼 신선하고 아름다운 캐럴을 경건한 마음으로 들었다.
이어 모어 신부는 축하 미사를 집전했고 성탄절 미사는 성공리에 끝났다.

이듬해 봄 수리공이 와서 성당 오르간을 고쳤다.
모어 신부는 곧 다른 교구로 이동되었고 그가 만든 캐럴은 잊혔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성 니콜라우스 성당의 오르간이 자주 고장이 났다.
1824년경에 오르간을 다시 제작하기 위해 마우라허라는 장인을 고용했는데
그가 다락방에서일하다가 이 노래 악보를 발견했다.
노래의 간결성이 늙은 오르간 장인에세 감동을 줬다.

그는 그루버에게 악보를 얻었고 정기적으로 유럽 곳곳을 순회하던 민속 악단들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연주곡목에 추가하게 되었으나, 그 노래는 티롤 지방 민요라고 알려졌다.
즉 이 노래 가사와 곡조는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 나갔지만 작사 작곡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1848년 모어 신부는 폐렴에 걸려 55세로 세상을 떠났다.
1854년 프러시아 국왕의 궁정악장이 이 노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작사 작곡자가 누구인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소식을 접한 67세의 그루버가 그 경위를 알리는편지를 베를린으로 보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이제 크리스마스 음악의 상징이 되어 세계 각국에서 불리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시베리아의 어느 포로수용소에서 독일군, 오스트리아군, 헝가리군 포로들이 일제히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합창했다.
러시아 포로수용소장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서툰 독일어로 포로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밤 나는 전쟁이 일어난 후 처음으로 당신네와 내가 적이라는 사실를 잊을 수 있었다."
이 단순한 캐럴이 하늘의 평화를 만들어 내는 놀라운 힘을 보여 주고
있는 예는 이외에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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