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성지소식 > 신부님 말씀

신부님 말씀

연중 21주일

  • 관리자 (shrine)
  • 2021-08-21 09:17:00
  • hit1471
  • vote24
  • 222.118.43.92

* 연중 21주일

 

지난 몇 주일 관상기도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했는데

처음 듣는다는 신자들 말을 듣고 내가 쇼킹했다.

 

성당에 와서도 주구장창

묵주기도만 한다고...

그건 호텔 고급 레스토랑 가서

짜장면 시키는 거와 같다.

짜장은 동네에 다 있잖은가? 호텔까지 와서...

 

성당은 집에 없는 성체가 모셔졌는데 그분과 대화를 해야 할게 아닌가?

 

답답했는데 요즘 가톨릭방송

에서 향심기도 전담신부인

이승구신부님 강의가 유튜브에 8강으로 떠있다.

관상기도에 대해 자세히 잘 설명하고 있다. ㅡ참고하시길...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너는 기복 신앙이구나! 하면 다들 기분 나쁘게 생각한다.

 

반면에 내세 지향적인 신앙관을 얘기하면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핀잔한다.

 

무릇 종교의 근본은 내세 구원이 절대적 가치를 갖는다.

 

종교의 정의는 인간은 신에게서 와서 신으로 가는 존재이다.

내세에서 와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는 존재이다.

ㅡ돌아가셨다는 말은 종교적 단어라 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이념과 차별 되는 잣대라 할 수 있다.

 

신이 없다고 표방한 공산주의 사회주의는 이 세상이 전부다.

 

인간도 유물론으로 해석하고 영혼도 부정한다.

그건 인간은 동물과 똑같다고 고백함과 같은 것이다.

신이 없는 사람들은 이념이 곧 신이 되는 것이다.

대중의 인기와 포퓰리즘으로

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샤머니즘이 강하게 지배해왔다.

 

기복 신앙이 강하다.

많은 종교들이 한국에 들어오면 샤머니즘에 먹힌다. 타협하게 된다.

 

샤머니즘으로 바뀐다.

불교도 한국에 들어와서 내 세적인 것보다는 현실적 기복 신앙으로 강하게 변질됐다.

무당한테 빈 것을 그대로 부처님께 빈다.

대상만 바꼇지 그 기본은 샤머니즘 기복적이다.

 

개신교 역시 세상의 복을 많이 강조했다.

 

개신교 역시 종교형식만 바뀌었지 내용은 무당, 부처님 앞에서 빌었던 것을 교회에서 그대로 하는 경우가 많다.

 

가톨릭 역시 예외는 아니다.

미사지향과 묵주기도를 많이 하는데 무엇을 구하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ㅡ답이 나온다.

십중팔구 자식들의 성공과 출세가 대세를 이룬다.

 

자식들 영혼구원을 구하는자.

얼마나 될까?

 

오늘 요한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강조할수록 사람들은 다 떨어져 나갔다.

 

아직도 신자들이 내세적인 신앙과 기복적 신앙 사이에서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 할 것이다.

 

교회역시 보이는 곳에 엄청 투자를 하고 있으니....

행사도 건물 투자도 줄여야한다.

ㅡ여기엔 우리 지도자들 책임이 크다.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는 세례 때 분명히 밝힌 영원한 생명으로 무게가 실려야 할 것이다.

 

세례란 무엇인가 ?

물속에 온몸이 들어감으로써 세상에서 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제 서품 때 검은 옷을 입고 세상에서 죽는다고 다짐한 것과 똑같다.

 

물속에서 나올 때는 죽었다가 하느님 안에서 새롭게 부활한 몸을 상징한다.

ㅡ여기엔 사실 현세적이고 기복적인 것이 들어갈 자리가 없는 것이다.

세상에서 죽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영원한 생명인 하느님 나라에 입문한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실은 성당에서도 영원한 생명과 죽음에 대해서 강론하는 걸 듣는 것이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한국가톨릭의 아주 심각한 문제다.

 

세례를 했다고 직접적으로 곧장 영원한 생명을 구하는 깊은 경지에 갈 수는 없다 손 치더라도, 점점 무르익을수록 그 쪽으로 기울어져가야 할 것이다.

 

살아가는 모든 먹고 사는 것, 직장 생활, 배움, 건강 챙기기 등등 그 모든 것은 무엇을 위해서 해야 하는가?

 

사실 신앙인에게는 세례 때 다짐했던 것처럼, 현실적인 모든 행동은 영원한 생명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한 생명을 향하게 되면

 

세상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예수님 말씀처럼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ㅡ순교자들, 의인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 세상이 다가 아니라는 걸 몸소 보여주었다.

 

마치 성서에서 모든 피조물들은 하루 빨리 자신들이 완성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라고 고백한대로의 삶을 보여주셨다.

 

하루 빨리 하느님을 대면하고 싶어 했다는 걸 보여 주셨다. ㅡ기쁘게 죽게 해달라고 고대했다.

 

이 세상에서는 사랑하는 하느님이 뿌옇게 보이지만 죽음과 부활 후에 하느님을 뚜렷하게 면전에서 보고 싶다고 했다.

 

저승의 눈으로,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 이승을 초연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이승에 뿌리를 내리지 않는 것이 참신앙의 진수다.

 

예수님께서는 12명을 빼고 다 떠난 마당에도, 영원한 생명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건 천지창조의 목적이기도 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궁극적인 진리 역시 영원한 생명인 것이다.

예수님 자체가 영원한 생명덩어리였던 것이다.

 

가톨릭마저 기복적이고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것을 구하는 세상과 타협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영성의 뿌리가 약할수록 포퓰리즘으로 가기 마련이다.

행사 위주와 쪽수를 채우는 인원 동원령이 우선될 수밖에....

 

예수님은 열두 제자가 다 떠나더라도 오직 영원한 생명의 가치만은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너희도 떠나가겠느냐? 하고 담대하게 물으신다.

하느님나라는 양이 아니라

영적인 질이 중심이다.

신자 수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을 입은, 아버지의 힘을 받은, 좁은 문으로 가는 극소수의 제자들 입에서 터져 나온다.

ㅡ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지니셨는데....

 

가톨릭교회 역시 부활에 대해서는 많이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죽음과 내세에 대해서는 말하기를 머뭇거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갈수록 강론 주류가 이 세상에서의 안정과 잘 먹고 잘 사는 곳에 촛점이 향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사실 변형된 기복적 신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겠다

 

가톨릭교회만이라도 ㅡ인간은 죽는다. ㅡ 그리고 ㅡ부활이 있다. 결국 내세를 목적으로 한다고..

저곳이 우리 본 고향이라고.....

ㅡ 영원한 생명이 있다고 고백하고 선포해야 할 것이다.

 

영원한 생명을 품고 살아간 이들의 삶은 결코 세상에 회의적이고 염세적이라고 할 수 없다.

 

성인들, 순교자들은

오히려 그 어떤 철학자 지식인보다도 더 참되고 진실 되게 살아간 것을 보여 주었다. ㅡ가장 고귀하고, 세상에서 자유롭고, 품위 있고, 존엄한 인간의 모습과 성숙도를 보여주었다. ㅡ하느님의 모상을 분명히 보여준 이정표들이다.

 

세상이 눈에 보이는 것만을 추구하는 이 시대에서 하느님을 구하는 것은 마치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 하고 비가 언제 온다고 그러냐? 우리와 먹고 마시자! 고 꼬드겼던 저 노아의 방주를

되새기게 한다.

 

노아는 하느님을 향해, 저 우직한 짐꾼인 당나귀의 뚜벅뚜벅 걸어간 발걸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홍주성지

머슴 올림

게시글 공유 URL복사
댓글[3]

열기 닫기

  • 실비아 2021-08-21
    넘 좋은 말씀들감사합니다 이승에뿌리를 내리지않는것이 참신앙의 진수다 감사합니다
  • 최상원야고보 2021-08-22
    눈뜨게 해 주셔 감사합니다.
  • 이택만 안드레아 2021-08-23
    신부님께서 보내 주시는 글,
    마음에 새기며 잘 보고 있습니다.
    머슴 신부님을 위해
    날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건강하시고 기쁘게 지내세요.
댓글작성

열기 닫기

댓글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