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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연중 제 29주일

  • 관리자 (shrine)
  • 2021-10-16 08: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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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 29주일

 

인간은 누구나 위로 올라가고 싶은 욕망이 있다.

 

구약의 바벨탑에서부터 하늘 끝, 하느님의 자리를 넘보는 데까지 가는 게 인간이다.

 

구약의 죄들은 우리들 인간들의 군상을 잘 말해주고 있다.

 

기득권자들은 그 힘을 내려놓는 법이 거의 없다.

 

제자들 역시 예수님의 우편 좌편을 차지하고 싶어 한다.

 

예수님 ㅡ 너희는 세상의 권력자들처럼 힘을 써서는 안 된다! ㅡ발 씻는 곳에서도 신신 당부하셨다.

 

오히려 섬김으로써 지배욕을 눌러야 한다는 것이다.

 

바벨탑 이야기는 인간은 모이면 누가 누가? 더 높은가? 도토리 키 제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지적한 신화다.

 

ㅡ인간이 모이면 우둔해지는 걸 고발한 것이다. 인간이 모이면 힘이 생기게 되어있다.

권력의 최고 자리에 가면 거의 자신이 신이 되기에 신을 섬기기 힘들다.

입으로만 하는 거지...

 

결국 신을 떠나는 형상을 너무너무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힘을 쓰는 자는 그 자체로 월권을 하는 것이고, 하느님을 떠나 자신이 그 힘을 쓰는 것이다.

 

사실 모든 힘은 하늘에서 오는 것이다.

주어지는 것이거늘 지가 잘나서 그런 줄 안다.

 

힘은 세상의 속성인 것이지, 하느님 나라의 자녀들의 몫은 아닌 것이다.

 

나는 행운아 인데 내가 모셨던 어르신은 사제가 쉬는 월요일에 장례가 나면

보좌인 나를 쉬게 하고 당신이 희생으로 도맡아 하셨다. ㅡ보통은 아랫것이 하는 게 상례다.

 

사제들이 성가시러하는 일이 있는데 그런 걸

나에게 절대 시키지 않으셨다. ㅡ 레지오 훈화를 한 번도 안 시키셨다.

 

이 외에도 마치 내가 주임인 것처럼 나를 섬기며 사셨다.

그분은 지금도 후배들이 존경해마지 않는다.

 

그런데 신자들에겐 무척 엄했다. ㅡ호랑이 신부였다.

 

이런 섬김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그땐 보좌 철부지 때라 나도

몰랐다. ㅡ 지금 같으면 그런 건 내가 먼저 알아서 했을걸....

그땐 실껏 잘 즐겼다.

 

어른이 아랫사람을 우선으로 돌보고 하는 희생은 그냥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ㅡ자신을 버리고 뼈를 깎는 비움이 없으면 할 수 없다는 걸 나이 들면서...

 

그분의 지론은 모든 사제는 그냥 동료 사제일 뿐...

예수님의 똑같은 제자들이기에 그냥 존중해줘야....

자신을 다 비우고 내려놓은 것이다.

 

효 사상 자체는 아름답다.

윗분을 잘 모시는 건 맞다.

이 아름다운 미풍양속은 잘

이어가야 된다.

선배가 있기에 후배가 있는 거다.

 

그렇다고 진리보다 우선해서는 안 된다.

 

무조건 나이, 서열, 장상의 말을 따라야 하는 문화는 이제 내려놓고 더 좋은 의견,

공공이익, 공동선, 합리적인 것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누가 누구를 지배하고 다스리려 하는가? 감히...

 

하느님만이 다스리는 것이거늘....

 

부부도, 부자관계도, 스승 제자간도, 장상과 그 아랫사람간도, 사실 힘으로 폭압적으로 밀어부칠 수 없는 것이다. 그 누구도 그런 권한 받은 적 없다.

 

교회도 장상들에게 그런 권한 준적 없다. 봉사직만 준 것이다. ㅡ스스로 착각이다.

바벨탑 위에서 노신다.

 

이는 예수님과 상관없는 사람임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다.

 

확신하건데 힘을 쓰는 자들은 소인배들이다.

 

세상의 모든 힘은 악이다.

 

갑의 위치에 있는 책임자들은 이 진리를 자주 뇌까릴 필요가 있다.

 

사실 인간은 타자에게 어떤 한 권리도 없는 자이다.

 

그냥 존중하고 기다려주는 것이 내 자리, 인간의 자리인 것을...

무슨 권한으로 타인에게 강요한단 말인가?

설사 그가 자신이 낳고 키운 자식이라 할지라도 강요할 그 어떤 권한도 없는 것이다.

 

시간이 걸려도 때론 답답해도 기다리고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것이 지름길이다.

 

자녀들도 후에 감사를 느낄 것이다. ㅡ자신들을 존중해준 부모에게....

 

나 자신도 나를 존중하고 나를 섬김으로 대해주신 어르신들이 더 존경스럽고 감사함을 느낀다.

 

부모님의 기다림 존중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아버지는 우리 어릴 때,

당신이 잘못하신 것 자식들이 지적하시면 그때 그때

받아들이셨다. ㅡ난 그게 참 좋았다.

 

지금도 나는 옳고 그름엔 위, 아래 없이 하는 편이다.

 

예수님의 육화는 관계의 기본을 잘 말해주고 있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

다정히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봐도 그렇다. ㅡ다른 모든 인간을 대하는 게 딱! 동네 아저씨다.

 

수천 명의 군단을 앞세우고 백말타고 오셔도 시원찮으실 분께서 한 여인과 친구처럼 다정히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그 여인은 자신의 바닥까지 다 드러낸다.

 

왕궁 황제들의 서빙을 받아도

부족한 분이 저 산골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단자들의 마을까지 손수 납시어서 나누는 그 대화는 실로 눈물 겹다. ㅡ황공스러워서..

 

왕과 신하

윗사람과 아랫것

사장님 ㅡ 고용인

주교 ㅡ 사제

사제ㆍ신자

 

이런 옷들이 우선인 곳에서는 너와 나의 대화는

나눌 수 없다

 

그 신분과 고정관념과 선입견들로 얼룩져 전정한 대화는 불가능하다

 

어떤 조건도 직위도 옷도 본질이 아니다

인간이 인간 눈을 가리게 하여 인간은 안보이고 옷만 보게 하는 것이다.

 

신자들이 사제에게 하는 그 존중 감으로 서로 대한다면

거기에서 하느님 나라가 생겨날 것이다.

 

우물가에서 진정한 친교와 나눔이 일어난 이유는 ㅡ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이 마치 아저씨와 아줌마인 듯,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 있었기에

통교가 발생된 것이다.

 

만약, 누가 나는 갑이고, 너희는 을, 하는 그런 관계에서는 진정한 친교가 나올 수 없다. 그건 오늘 예수님께서 하지 말라는 짓을 하는 것이다. ㅡ나도 그런 불편한 사이에서는 나를 내주지 않을 것이다.

내 시간을 내주지도 않을 것이다. 존중 감 없는 만남은 시간낭비다

내 입만 아프다.

 

서로 존중해주지 않는 사람과는 진정한 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다. 피상적 껍데기 관계만 있을 뿐...

 

그 자체로 인격적인 사이는 없는 것이다.

갈수록 계층 간의 간격은 멀어지고 인격적 만남이 없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신데도 당신의 모든 걸 다 내려놓으시고 우리를 인간 대 인간으로 존중해주셨다.

 

거기엔 어떤 옷도. 신분도. 나이도. 출신도 배움의 길고 짧음도,

그 어떤 사회적 가치도 없다

그래서 남성 레지오단들이 모이면 2차로 가서 주님을 모시는 이유다.

 

만약 예수님께서 하느님인 것을 내세우면서 오셨다면,

아마도 엄청난 힘이 작용했을 것이다

 

서민들은 그분을 만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힘 있는 자들이 그냥 두지 않았을 것이다. ㅡ줄을 대야 했을 것이다.

 

신앙보다는 맹종이,

있는 그대로 나보다는 포장을, 아저씨의 편함보다는 두려움과 무서움,

등들이 압도했을 것이다.

 

힘없는 아저씨로 오신 것은 엄청난 배려인 것이다.

 

나도 가끔 상상해보는 데

나의 생활 중에 예수님께서

짠하고 나타나신다면?

ㅡ제자들도 그랬듯이

유령이다! 하고 겁을 먹을 것이다.

그냥 죽음 후에 직접 보는 게 피차 편하다. ㅡ지금처럼이 좋다

 

이처럼 배려 차원에서 하느님도 당신의 힘을 전혀 쓰지 않고 이승에 오셨다.

 

하느님의 진정한 사랑을 느낀 사람들의 특징은 예수님의

인격을 본받게 된다.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똑같이 다른 사람을 대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의 신분이나 소유물 조건으로 형성된 껍데기 자존감에서 비롯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대한다.

 

나에게 고용된 사람들, 소위 갑을관계에서 참 신앙은

모두를 똑같은 인격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준다.

 

내 자신이 좀 위치가 있고 힘이 있는 자리에 있다면, 편하고 대우받는 것을 미안하고 불편하고 가시방석으로 느끼는 게

진짜 인간성인 것이다.

 

그 때 진정한 봉사가 나온다.

아니면 고작관료가 되기 십상이다.

 

만일 교회에서도 지도자들이 나는 당신 신자들보다 더 높고 우월하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 자체로 정신상태가 썩은 것이다.

섬김 봉사는 말 뿐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잘 아는 선배와 서로 비판도하고 쓴 소리도 하는 사이였다. 서로 고마워하는...

시간이 흘러갈수록 선배가 듣기 싫어했고, 나에게 대놓고 말하기를 옳은 소리도 이젠 듣기 싫다! 더 이상 하지 말라! 고 했다.

 

우리는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인데 ....

씁쓸했다. ㅡ 좋은 소리만 원하는 것은 귀를 막는, 진리와 멀리 살기로 작정한 거다.

이런 피상적 관계 역시 시간낭비다.

 

 

사제가 부유층들과 사목위원들과 너무 가까이 하면 사람들은 맘이 떠나게 되어있다

 

사제가 소외계층에게 더 맘을 쓰는 것이 드러나면 가진 자 들도 더 많이 내어놓는다.

 

하느님 나라는 한 분만 주님이시고 아버지이시고 스승님인 것이다

 

하느님 나라는 힘을 쓰는 사람들이 없어야 그 분의 힘이 더 드러나게 되어있다.

 

지금도 하느님 나라가 폭행당하고 있다.

힘이 있고 힘을 쓰는 자들에 의해서....

 

서로 섬기는, 양반 쌍놈 없이 한 형제자매로 지냈던 한국초기 교회로 돌아가고 싶다.

 

홍주성지

머슴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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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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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비아 2021-10-16
    복도 많으신 신부님 멎진 어르신 이 어느분이신지 궁굼하네요 그냥존중하고기타려주는것이 인간의 자리인것을...감사합니다
  • 관리자 (shrine) 2021-10-23
    참어려운일
    요셉 피나2021-10-16 09:47:40hit64vote161.73.74.102
    오늘 말씀 너무좋으심.
    저도 본받도록 열심히 노력해야지요
    결심해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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