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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나라와 교회

  • 관리자 (shrine)
  • 2021-12-04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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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나라와  교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주셨는데,  정작 남은  것은 교회만  남았다."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말이다.
 
주님은  진리와 정의의 나라를  주셨다   사랑의 나라를 주셨다.   힘을 쓰지 않는 나라,
즉,하느님 나라에 대해서는   진복팔단이 많은 것을  말해준다.ㅡ이  참된행복은  예수님의 초상화라고  칭해진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ㅡ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이  순수성은  신앙의  길이며,
신앙의 조건이기도  하다.
불순물을  깨끗이  할  수록  그  만큼  주님이 보인다.
 
영혼이  맑고 깨끗하고,  유리창처럼   투명한  이들은   주님을  자신의  영혼  안에   고이  그느리시게  한다.
 
주님을  모시는 이들은  그분의   영이  지배하고 그를  
차지하며  세상을  하느님의  눈으로 보게한다. 
통찰력이  생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 선명하게  뚜렸하게  진리의  길을 보게한다.
 
주님께서  머무시는  이들은 
딱딱하고 굳은  돌덩어리  같은  고집과  아집들과 선입견들을  녹여버린다.
 
마치,  저   한 겨울  냇가의 견고한   얼음들 같은, 전혀  깨지 못할  것 같은  것들을,  저 높은 하늘의 빛살과 봄날의  포근하고   아늑한, 만물을 비추고  생명을 주는  그  빛이  결국   눈처럼 녹아내리게한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며  많은  걸림돌을   마주하며, 만나게된다.
하느님나라를 선택할  것인가?  교회를  택할  것인가? 
ㅡ이 둘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다는 말이기도하다.
 
하느님 나라는  '이미 아니 아직'의 카테고리에서 현존한다.ㅡ  시간차를 갖는다.
이 세상에  있는 한,  여기에  머무는 한,  우리는  완성된  나라를 볼 수없다.
 
하지만, 이미  불이 당겨졌다.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의 육화와 함께 시작되었다.  여기에  왔다....
그러나  '아니  아직'의  형태를 
벗어날 수 없다. 아직  다 영글지는 못했다.
 
그분만이  완성할  것이다.
그분의  때에.....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고 했다.
 
교회와  하느님 나라가  온전히  일치한 적은없다.
부족한 인간들이  교회를  성령과 함께  가져가기  때문이다 .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고.....
 
역사  안에서  교회는  하느님나라의  완성을  눈으로 보고 싶어 했다.
앞당겨  실현하려고 했다.
그분의  몫이거늘  인간이  주도하려했다. 
 
즉, '이미 아니 아직'인  지상의 미약한 하느님 나라인 것을,  
여기  있다  저기  있다를  선포하려고 발버둥쳤다.
 
신의  대리자라고 자처하고, 신의 이름으로 확정하고,
신의 자리를  차지했다.
하느님나라를 눈에 보이는 곳에  있도록  하고 싶은 유혹에   걸려든 것이다. 
인간안에서  하느님나라를  찾으려는  유혹...그러나,
 
 오직   그리스도만이  참 스승이시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신의 대리자다.  동시에  알파요 오메가이시다.    그분만이....
아버지는 한 분 뿐이시다를 교회는 꼭 기억해야한다.
넘보는  불경을  범해서는 안된다. 넘보지 말것이다. 사제이기에  진리이다는 생각은  불경이다. 진리를따라사는  삶이 있기에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있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고집하는 와중에서,  거기에서  많은 부작용이  시작되었다.
되어가는 과정의  도정에 있는 것을,  완성된 그 무엇으로 보여주려다가  오히려    비틀려지고 왜곡된  모습이 나온 것이다.ㅡ원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진실을 갖는 것인데.....
 
"교회는  거룩한  창녀다"라고  교부성인  암브로시오가  말한 바 있는데,
 
교회는  늘  거룩함과  죄가 얼룩진  역사를  지닌다는 것이다.  이 세상엔 완전은  없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리라.
이건  세상  끝날 날까지  멈출 수 없는  한계일  것이다.
그런데 계속 스스로 완전한 척 하는 적이  많았다. ㅡ역사
완전하다고 할수록 세상으로부터  따돌림을 받는다.
대화가  단절되기에....
 
진리를 구하는 맘이  없다면 
악으로 기울어진다.
있는 힘껏 달리지 않으면  굴러떨어지게  되어있다.
인생과  신앙의 길은  늘 기울어진 비탈길 위에  있는 도정에 있기  때문이다. ㅡ로마노 과르디니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한,
우리는 그리스도인인 것이지,   당연히  그런 건 아니다. 신앙은   우리 맘대로 할 수없는,  기적과 같은 은총이다.
 
인간은 신앙을,  진리를 소유할 수 없다. 진리는  진리를  원하는 이에게  다가올  뿐.... 강제하지  않는다.
또 다시  욕심이,  마가  끼면 
진리는  점점  저  멀리  사라지는,  등대를  뒤로 한채 어두운 바다위의 
폭풍을  향해 질주하는 배와 같을 것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방향을 돌려 등대를 향해  빛을 구하지 않는 한, 
저  넓은 바다에서는 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잣대, 기준을 거부하면 상대성의   가치만 무성할 뿐이다. ㅡ현대의  무신론이다.   
정답도 없다고? ㅡ합리화다.   진리를 부정하는   다른 말이다.
 
그 잣대는 절대 진리일 뿐인데,  우리의 지존이신  주 하느님뿐인 것을.... 현대인은  애써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인간이  세상의 주인이 된지 오래다.
 
르네상스 인본주의가 그 주인공일  것이다. 
신이 있어  인간이 존재하는  것에서  나는  생각한 고로 존재한다로  가치변도가 생겼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공산주의   사회주의가  "신은 죽었다.  종교는  아편이다"를 표방했다.
 
그러고 나서   이 세상을  교묘하게 그런  우상들이  이끌어가고 있다.
하느님을  등뒤로  사는  현대는  인간본위, 세상위주의, 이념의 우상화 속으로 
잠식해 가고있다. 
 
교회 역시  이 이념안에 빠져  이 세상의 상대적 진리가,  이념이 마치  진리인듯,  영원한 생명 대신  강론대에서   이념을   천박하게 외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ㅡ 심지어  수도원 안에  좌편향 열사의 기념관까지  모시고 있으니.... 말이다.
 
신앙의  끝은  사라지는  이곳, 즉   지구와 땅을 말하지 않는다.
신앙의 핵심은 요한복음 6장의  말씀에 있다. ㅡ  나는  영원한 생명을  주러 이 세상에 들어왔다고 선언하신다.  그 기쁜소식을  전하라고  사제들을   뽑아 세운 것이다.
 
그런데,  누가 만약,  영원한 생명보다  정치가, 인권이, 복지가, 환경이, 공산주위가, 사회주위가  극보수가 최우선시하는  사제 수도자가 있다면  그직을 버리고 당당히  옷을  벗고  사회 사업을  하셔야한다. 똥  오줌도  못 가리면 안 된다.
 
그리고 정의가  정권따라  철새처럼  왔다 갔다 한단 말인가?  왜 요즘은 이 정부들어서 정의를  외치는 소리는 없는가? 정의도 편가리기를  하는가? 내로남불하는가?  ㅡ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편인 것이다.
중립적인  입장이 교회의 지혜이다. 양쪽 모두에게  쓴소리도 해야  멋잇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과  하느님을   최고 가치에 두면서 인권, 복지, 환경등등을  포함해야 하는 것이다.
강론대에서 주님보다  교황이나, 성인이나, 장례식 조사나   그 무엇을  더 비중을 두면  반칙하는 것이다.
작금의 한국교회는 내세와 마귀와 영원을  선포하기를  주저하는 듯 싶다.
지금의 현세지향적인 풍조에 교회마저  넘어가는 듯하다.  ㅡ영원한 생명을  들어보았는가? 강론에서?
 
복음대에서는  기쁜소식만 전하는 것이 맞다.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그분만을 선포해야한다.
인간죽음의 숙제를 부활로써  해제하신  영원한 생명을  외쳐야한다. 이승은  영원에 비하면 쓰레기라고,
지나가는 정거장에 불과하다고.... 내세지향으로 가야한다. 그래야 나이들 수록 행복한 진리를 마주한다.
 
주님도 돌아가셨다  이승이 아닌 저승으로.... 우리가 갈 곳도 저승이다.  ㅡ간단한다. 진리는 
 
지상낙원을 꿈꾸는 이념들은 노인들의 맘을 갈궈 먹는다.  그러나   참신앙은  외적인간은  쇄락하지만, 내적인간은  점점 새로워지나이다.  하루빨리 주님을  마주하고 싶다는  진정한 생명을  가지게 한다.
 
신앙생활 중에서  "나 만큼은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 "ㅡ이미  가장 큰  유혹에 걸려든 것이다.
그런건  이 세상에  없다.
 
하여,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주님께서도   돌아가실 때 비로소,
"다  이루었다....."
 
그분께서도 살아생전, 흔들릴 때마다  산속으로 피하셨다.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대목이기도 하지  않는가?
 
앞서 가신 그분께서도 육체를,  세상을  몸에 입고 있는한,  자주 아버지께 손을  내밀었다.  ㅡ도와 달라고.... 기도를  밥먹듯이 하셨다. 
 
사제도 부족한 인간들이다. 그래서 교회는 늘  부족한 이들의  공동체다  
잘해도 욕을  먹기도 하고 심지어    억울한 누명을  쓰고 본당에서  쫓겨나는 신부님도 봤다. 그리고 일찍 삶을  마감한 동창신부도  있었다.ㅡ타교구  일이다.
그런데  그 신자 벼락 맞는  벌을  직접 보았다. 눈이 멀었다.
 
필자는   본당 있을 때 특히,  결손가족 이혼가족  사랑이 결핍된  학생들을 많이 더 안아주었다. 의도적으로,.....   어느 보좌 신부님이  아이들 힘껏 안아준다는 기사를 보고 나도 용기를  내보기도 헀다.
그리고 사춘기 청소년들을 많이 많이 안아주려고  노력했다.   아이들 무조건   많이  안아주었다. ㅡ내 자신이 어릴때  사랑 결핍이 있었던 터라서.....
그들의  상처를  사랑으로  채우려고 나름  노력하기도 했다 어른들도 울면서 고해보는 이들, 힘든이들을  많이  보듬어  안아주기도 헀다. ㅡ사목국장 임기선신부 시절  전신자 안아주기 프로그램에서 전신자  다 울었다. ㅡ 감동  감동, 엄청난 에너지가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아이들을  안아주기를 좋아했던 나는  그 와중에,  나름  오해도  받은 적도 있었다. ㅡ사랑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다 내맘  같지 않다는 것도 경험해봤다 여자와 남자가 다르다는 것도 배웠다... 참!  세상살기, 사제생활하기  피곤하다.  ㅡ하여,  성지가 참  좋다. 말이 없다.
 
이제   사람끼리  함부로 텃치하기도 어려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코로나도 그렇고.....더 삭막하다.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안스러울 때도 있다.
지금은 부모 허락받아야 하나?   본당을   떠나 모르겠지만,. 나중에  본당가면 동의서 받은 아이들만 안아 주련다. ㅡ. 성지에 오는 아이들 꼭꼭 안아줄 것이다.
ㅡ옭아매려면 없는일도  만드는 세상이니.... 오해를 받은 신부님들도  많을  것이라 여겨진다. 소설도 많고....
 
교회는  이승에 사는한 아무리 잘한다 해도,  세상에 표류하는  한,  완성은 없다. 
절대적인  무류함을  고집할 수 없다. ㅡ아니 아직이란 말이다. 아직.....미완성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세상의 빛 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진리를  모시고 가는  하느님 나라이다. 여기에서만 ,  여기를  통해서만 신앙이 자라나는 것도 사실이다.  이 부족한 이 교회가  영원한 생명을 준다.
사제나, 사람 자체가  곧 교회는 아니라는 것이다.  ㅡ기적같은 일이다. 우리가  교회를 끝까지 사랑해야하는 이유다  
 
 
그 넓고 어둔운  망망대해에 유일한  등대의  역할을 해주신 분이  우리와 함께하신다.  ㅡ교회의  어머니이시다.
성모님은  또한   성령의 짝이시다.
성모님은  바다의  별이시다.
칠흑같이  깜깜한  어둔밤 , 특히  밤바다의 뱃사공들에게  북두칠성은  우리의 방향을 알려준다.  
그와 같이 성모님께서는 2000년  동안 교회가 나아갈 길을 비춰주셨다. 예수님을  품고 가신분이기에....
 우라 역시  잣대, 기준을 바라보면 그것이   나의  현방향을  가늠하게 한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알려주지 않는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ㅡ성모님과  친해지면  자연스럽게 우리를   성령과 진리안에  머물게  하신다
 
바다의 별들이  또  있다.
순교자와  성인들이다.
.
위령성월  첫날,  죽음을 묵상하는 첫날,
모든 성인대축일을 지낸다.
시편 지혜서에서도  말하고 있다. ㅡ최고의  인간은?
바로 하느님을  옳곧게  섬기는 이들이라네 !
하느님  섬김에서  샘물이 나온다.   지혜와  통찰력이....
 
인생의 목적, 신앙의 목적이  바로 성인들의  삶이라고...
하느님 나라의  진복팔단을 자신들 안에서 실현한  분들이시다. ㅡ이 시대의 이정표다 
 
그래서  아무리 덥고  추워도 죽으라고 순례자들은  이  성지신부들을 
시달리게  한다. 감사한 일이다.
코로나도, 더워도 순례자의 발길을 멈추지  못한다.
 
착한 양들의  진리와 생명에 대한 갈증을 여기 성지에서, 그들의 눈빛에서  느낄 수있다.
ㅡ바로 여기가  하느님 나라이다.
 
교회는  그 자체가 하느님 나라는 아니다. 역사가  말해준다. 오직 진리를 향해 갈  때,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갈뿐이다. 2000년 교화는  성령을 모시고 가기에  하느님  나라임엔  획실하다.
그러나  진리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세상의 불완전성은  교회도 예외를 둘 수는 없다.
 
교회 조직을, 교계제도를 강화한다고 하느님 나라가 오는 것은 아니다. 
교황청이   하느님나라에 더 가까이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 처럼,  사제관에 성령이  더  많다고 말할 수 없다. 
마음이  가닌한  사람들  옳바르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이들 안에 성령이  더 많은 것은 확실하다.  
진실을  마주대할  때,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있다고 말 할 수 있을 뿐이다.
 
교회는  어떨때는 세력확장,  인원 늘리기, 
내 사람  박아놓기,  힘을 키우기,  줄 세우기,자기 사람 만들기 등의 세상이 가는 길에  빠져들 때도 있다.
교회에  검은돈이 들어오면  땅은  오염되고 그 땅에 사는 인간도 어둡게 된다. 
 
집안도 마찬가지다. 
아이들  핑게대고 검은돈을  집에 들이면  식구들  역시  좋치 않게된다. 길게봐야한다. 
당장은 좋은 것을 먹겠지만 말이다.
검은돈은  반드시 돈세탁해야 한다. ㅡ하늘에 보화를 쌓음으로써 씻어내야한다.  
착한일 나땜에  못살게 되는 이들을  도와줌으로써.... 그래서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자비를 입어 심판대에서  좀  면죄부를  받을 것이다.
 
하여튼,    세상의 정치가들처럼   자기의 이기적 세력을  키워가는  이들 안에는 하느님 나라가 없다고   단언할 수 있겠다.  몸만 여기있는  것이지 세상과 같은 삶을 사는  것이다.ㅡ자신이  기준이 된다. 줄을 서게하고,심지어  힘을  쓰기까지한다ㅡ  예수님의 사람인  형제들에게....
 
이들은  교회정신을  기득권들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싶어할  것이다.
순명, 역시  지도자들 입장에서  가르치기도 한다. 자신에게   줄을 서는 것이 교회정신이라고....
주교들  본당행차시 거마비 다 없애야한다 . 관리국에서 드려라! 기름값은.....
 
과거에 했던   인사에  영향주는일체의 것은 다 없애야한다
주교와  사제들과의  금전적 감사표시는  없애야한다.
교무금으로 부족하면 더 거두시라!  더 내겠다. 공적으로....사제들  개인적으로? 글쎄   본당재정을 그렇게 허투로 거래하면 
안된다.
 
순명의  기본은  예수님께  대한 순명이라고 배웠다.
진리안의 순명.... 정의와 진리의 나라라고....
진리를 밖으로 나온것이   바로 참 권위라고 말할 수 있다.바로   그 테두리 안에서 순명이 논해지는 것이다.  진리 아닌 것에서는 순명을 요구하는 것은 스스로 권위를 실추시키는  것이다.
 
권위는  어디서 오는가?  진리를  수호하는 중에, 진리를 선포하기에, 진리를 구하기에, 삶으로 사는그자리에 참 권위가 있는 것이다. 교회  스스로  권위를  훼손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신자들은 진리를 구하거늘...
 
진리이기에 진리 앞에 절대순명이 나오는 것이다 . 교회 지도자이기에  무조건  요구할 수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하느님께서 절대로 이 교회를 세말까지  힘겹게?  끌고 가실 것이다.ㅡ희망의 이유다.
 
어느 교수신자 왈 ㅡ신부님!  이제 저희도 지쳤어요   진리를   꼭 바라지 않아요 사제들! 상식만 좀 지켜주세요...ㅡ나는 집에 돌아와  한참을  사제로서 울었다. ㅡ최고의 모욕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맞는  말이기에...변명도 못했다. 
 
사제에게서 교회에게서 진리를  보는 것을  포기했다면...  문을 닫을때가 온 것이다.
 
교회에 대한 순명?과   예수님께  순명? 이  서로 상반되게  다를  때도  있다.ㅡ사람? 진리? 의 기로에.....
구분하기 힘들 때가 종종 있다. 바로 그떼마다, 하느님께 순명하려고  신앙을  택했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하느님 나라에 더  가까운 것이  무엇인가? 진리에  가까운 것이  무엇인가?
 
진리가  아닌  것을 지도자가  요구할 때  "아니오"를 외칠 수있는 성숙한 신앙인이 될 필요가 있다.
교회 역시  엄밀한 의미에서  명령권은 없다. 단지    권고만 있을뿐, 힘으로  찍어 누르는 천박함은  버려야한다. 주님께서도  우리 모두를 더이상  종이 아니라 벗으로 부르셨음을  기억해야한다
 
순교자들은  족보를 다 버리고 평등을  말했건만 
지금의 교회는 왜 이리 양반 쌍놈의  차별이  설쳐대는가? ㅡ기득권의   이기심이다. 횡포이다.
순명 역시  서로 상호 존중하면서  기다리고 설득하며 권고와 양보를  하는 과정안에서  나올 것이며, 공동합의가  성장할 것이다.진리는  과정도  중요하다  하겠다. ㅡ진리를  준다면서 때릴 수는 없는 법....
 
어른이  "예 아니오"도  못하면  아직 어린아이에  머문 것이다. ㅡ딸랑이도 역시.....
좀더  하느님 모상을 우리  각자 안에서 길러내고 깨어있어야  하겠다.
구약에서는  인간을  신이라고  부르기 까지했다. 
마치 불교에서 모두가 부처님이듯이.....
 
하느님 나라  즉, 옳은 일에 굶주린 이들은  만족할 것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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